인간과 동물의 다른 점으로 인간은 법을 만들고 따르는 존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동물계에도 일정한 종류의 행동 규칙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인간 사회의 법에 비견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이때의 법은 문화적 산물로서의 법을 지칭한다. 법은 인간의 생활 양식, 즉 문화의 한 영역이지만 본능에 의한 동물의 행동 규칙과는 다른 것이다. 문화적 산물로서의 법은 얼마든지 문화적 가공을 거쳐서 모방되고 전파될 수 있다. 따라서 최근 등장한 인공 지능도 프로그래밍을 통해 인간이 만든 법을 얼마든지 따를 수 있다. 그렇다면 인공 지능을 지닌 기계적 인간 유사체와 인간이 다르다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법을 진화의 산물로 보는 입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진화 심리학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현재와 같은 형태로 진화했는지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이 학문의 목표는 진화론의 관점에서 인간의 마음과 뇌의 기제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때 핵심은 인간의 마음도 육체와 마찬가지로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다고 보는 것이다. 즉 인간의 심리적 특질을 형성하는 유전자 복합체가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해 현재의 심리적 기제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진화 심리학의 입장이다. 진화론의 다른 분과인 인간 행동 생태학과 비교해 볼 때 진화 심리학에서 연구의 초점은 진화된 심리적 메커니즘이지 진화된 행동의 패턴이 아니다. 특정 문제 상황에 대한 행동 방식은 얼마든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진화 심리학은 행동 수준이 아닌 심리 수준에서 신뢰할 만한 반응 패턴을 찾아내는 것이 더 의미 있고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진화 심리학은 가족법과 관련된 여러 제도의 근원적 유래를 해명해 줄 수 있다. 가족법과 관련된 대표적인 제도는 상속과 관련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정 상속은 직계 혈족이 4촌 이내의 방계 혈족보다 우선된다. 이처럼 상속과 관련하여 왜 직계 혈족을 우선하는지, 왜 4촌 이내의 방계 혈족에게까지 상속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에 대한 답은 영국의 진화 생물학자인 윌리엄 도널드 해밀턴이 제안한 포괄적 적응도 이론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해밀턴은 동물들의 이타적인 행동이 이루어질 조건을 ‘rB>C’라는 공식으로 제시했 다. 유전적 연관도(r)와 이득(B)을 곱한 값이 비용(C)보다 클 때 이타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유전적 연관도란 이타적 행동을 받을 개체인 수혜자와 이타적 행동을 해줄 개체가 동일한 유전자를 지니는 정도이다. 나와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유전적 연관도, 그리고 나와 형제의 유전적 연관도는 각각 0.5로 같다. 그리고 나와 3촌의 유전적 연관도는 0.25이고, 나와 4촌 형제의 유전적 연관도는 0.125이다. 자손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전자를 각각 1/2씩 받고, 부부의 유전적 연관도는 0이기 때문이다. 이득은 이타적 행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으로, 다시 말해 수혜자가 낳을 수 있는 자손의 수를 의미한다. 임신이 가능한 연령일 경우는 그렇지 못한 연령보다 낳을 수 있는 자손의 수가 많으므로 이득이 크다. 한편 비용은 자신이 자식 대신 살아 있을 때 낳을 수 있는 자손의 수이다. 이 공식에 의하면 상속과 같은 이타적 성향은 나의 포괄 적응도를 높이는 행위, 즉 나의 유전자를 전파하는 데 기여하는 행위인 것이다.

 

 한편 진화 심리학은 형법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형법은 사회 구성원들 간에 암묵적으로 체결된 약속을 지키는 데 협력하지 않음으로써 이기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자를 응징하는 법이다. 그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리오 법칙, 즉 받은 대로 되갚는 원칙에서 유래한다. 이 원칙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사회에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형법의 본질은 비친족 간에 협력이라는 심리적 기제를 만들어 내기 위한 인간 진화의 결과일 수 있다. 이 설명에 따르면 형법의 본질은 인간들 사이에서 협력이라는 상호 이타주의적 행위를 이끌어 내기 위한 응보라는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가족법은 인간의 진화적 본성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인간을 규율한다. 그런데 인공 지능은 인간의 진화적 본성을 촉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인간이 인공 지능을 가진 인간 유사체에게 상속 하거나, 그것이 인간에게 상속하는 행위는 문화적 측면에서는 가능할 수 있으나 진화적 측면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또한 인공 지능은 기본적으로 인간 또는 다른 인공 지능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프로그래밍된다. 따라서 인공 지능은 애초에 이타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들어지기 때문에 인간에게 가해지는 형법의 원칙이 적용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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