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는 군사, 정치, 경제 분야 등 다양한 필요에 의해서 오래전부터 발전해 왔다. 암호의 종류는 암호를 만드는 방식에 따라 스테가노그래피와 크립토그래피로 나눌 수 있다. 스테가노그래피는 메시지의 존재 자체를 감추는 비밀 통신 방법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메시지의 존재가 발견될 경우 그 내용 또한 단번에 적에게 알려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이유에서 크립토그래피도 함께 발전해 왔다. 이는 메시지의 존재 자체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의 의미를 감추는 비밀 통신 방법이다.

 

 크립토그래피는 전치법과 대체법으로 나뉜다. 전치법은 단순히 메시지 안에 들어 있는 문자의 위치를 바꾸는 방법이다. 영어권에서는 이와 같은 방법을 애너그램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 단어 정도의 경우에는 이 방법이 별로 안전하지 못하다. 하지만 메시지에 사용되는 문자의 수가 많아지면 재배열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서 해독이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글자의 위치를 무작위로 바꾸는 이 방법은 보안성이 아주 높다.

 

 대체법은 메시지에 사용되는 글자를 짝을 이루는 다른 글자로 대체하는 방법이다. 대체법을 군사적으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카이사르이다. 카이사르가 사용한 암호법은 메시지에 쓸 각각의 글자를 알파벳에서 세 자리 뒤에 나오는 글자로 대체 하는 간단한 방법이다. 암호 전문가들은 원문에 사용되는 글자들을 원문 알파벳이라 부르고, 이를 대체한 암호문 알파벳을 사이퍼 알파벳이라 부른다. 원문 알파벳과 사이퍼 알파벳을 정하는 약속을 알아야 암호를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적군에게 메시지가 발견되어도 적군은 암호를 해석하기 힘들다.

 

 이후 암호의 역사는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암호의 기계화가 이루어진다. 이 중 슈르비우스가 고안한 에니그마라는 암호화 기계가 만들어지게 된다. 에니그마는 전선으로 이어진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문 텍스트의 글자를 입력하는 자판, 원문 텍스트의 각 글자를 대체하는 스크램블러, 그리고 암호문에 들어갈 글자를 나타내는 여러 개의 램프로 이루어진 램프보드이다. 자판에서 원문 알파벳에 해당하는 글자를 누르면, 중앙 스크램블러를 거쳐 램프보드의 해당 사이퍼 알파벳 글자 램프에 불이 켜진다.

 

 스크램블러는 전선으로 뒤엉킨 두꺼운 고무 디스크로, 이 기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다. 자판에서 나온 전선은 여섯 개의 경로를 거쳐 스크램블러로 들어간 뒤, 스크램블러 안에서 복잡한 회로를 거쳐 다시 여섯 개의 램프가 있는 디스플레이, 즉 램프보드로 나온다. 이때 스크램블러 안의 회로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에 따라 원문 텍스트의 글자가 어떤 암호로 바뀌는지 결정된다. 예를 들어 a를 입력하면 B에 불이 켜지고, b를 입력하면 A에 불이 켜지고. c를 입력하면 D에 불이 켜지고, e를 입력하면 F에 불이 켜지며, f를 입력하면 C에 불이 켜진다. 이런 식으로 ‘cafe’라는 메시지는 DBCF로 암호화된다. 그러나 슈르비우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글자 하나를 암호화할 때마다 스크램블러의 디스크가 한 칸씩 회전하게 만들었다. 이 암호문은 같은 방식을 적용한 에니그마가 없으면 해독이 힘들기 때문에 보안성이 아주 높다.

 

 또한 암호는 예술에서도 활용되었다. 음악에서 암호를 사용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계이름과 음이름을 대응시키는 것이다. 계이름인 ‘도, 레, 미, 파, 솔, 라, 시’는 서양 음악에서 각각 음이름 ‘C, D ,E, F, G, A, B’와 대응된다. 따라서 이 글자들을 조합하여 의미를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음이름이 A~G까지의 알파벳으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모든 단어를 음이름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악보에 일종의 메시지를 암호화하여 부여하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음악가들을 매혹시켜 왔다. 예를 들어 ‘시미미파’는 소고기인 ‘beef’라는 의미를 가진 암호가 되는 것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여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작곡가 조스캥 데프레는 미사 음악인 「라솔파레미」를 작곡하였다. 그는 왜 음계를 음악의 제목으로 지었을까? 이 음악은 선율이 ‘라, 솔, 파, 레, 미’의 음계에 맞춰 진행되는데, 이 음계는 유사한 발음의 이탈리아어인 ‘Lascia fare a me’라는 말에서 나왔다는 일화가 있다. 이 말은 “내게 맡겨 두시오.”라는 의미이다. 당시 데프레를 고용한 추기경은 재정난으로 인해 급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다. 데프레가 이에 대해 걱정하는 말을 하자, 추기경은 “내게 맡겨 두시오.”라고 말했는데, 데프레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음악을 통해 밀린 급료를 달라는 의미를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얼핏 보아서는 평범한 멜로디를 담은 악보로 보이지만 음표를 음이름으로 읽으면 숨겨진 의미가 드러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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