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학문적 지식은 판단의 형식을 취하는데, 18세기 철학자인 칸트는 모든 판단을 분석 판단과 종합 판단으로 구분한다. 분석 판단이란 주어 개념이 술어 개념을 포함하는 판단이다. 예컨대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이다.’는 분석 판단인데, 주어 개념인 ‘총각’을 분석하면 술어 개념인 ‘결혼하지 않은 남자’가 따라 나오기 때문이다. 분석 판단의 참과 거짓을 판별하기 위해서 언어에 대한 이해 이외의 경험이 따로 필요하지는 않다. ‘총각’이라는 개념과 ‘미혼 남자’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있다면 이 판단이 필연적으로 참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총각은 키가 크다.’처럼 주어 개념 안에 술어 개념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주어 개념에 부가적인 정보를 덧붙이는 판단은 종합 판단이다. ‘총각’의 개념은 ‘키가 크다.’라는 개념을 반드시 포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판단의 참과 거짓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경험적 확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모든 총각은 키가 크다.’는 거짓이긴 하지만 만약 참이라면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장해 준다.

 

 칸트는 이어서 선천적 지식과 후천적 지식을 구분한다. 선천적 지식과 후천적 지식 구분은 분석 판단과 종합 판단 구분과 달리 명제 자체가 아니라 명제에 관한 지식과 관련된다. 선천적 지식은 경험과 무관하게 알 수 있는 지식이다. 모든 분석 판단은 선천적으로 알 수 있다. 분석 판단에 포함된 용어들의 의미만 알면 된다. 이와 달리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후천적으로만, 즉 사람들이 까마귀를 경험한 다음에 알 수 있다. 감각 경험을 통해 까마귀가 사례별로 입증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까마귀를 경험할 수 없고,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태어날 까마귀는 경험할 수 없기에 ‘모든 까마귀는 검다.’와 같은 후천적 지식으로는 결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지식을 얻을 수 없다. 경험에 의존하지 않는 선천적 지식이 보편성과 필연성을 지닌 지식이다.

 

 분석 판단은 분명히 선천적으로 알 수 있다. 총각이 결혼했는지 알기 위해 총각을 조사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모든 까마귀는 검다.’처럼 오직 후천적으로만 알 수 있는 진술이 종합적이라는 것도 논란의 여지가 없다. 경험으로만 알 수 있는 진술들은 술어에 나타나는 것(‘검다’)이 주어에서 언급된 것(‘까마귀’)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칸트는 세 번째 범주, 즉 종합적이면서 동시에 선천적으로 알 수 있는 진술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어떤 진술이 경험과 무관하게 옳은 것임에도, 분석 판단과 달리 낱말의 의미에 관한 지식이 아니 라 언어 바깥의 세계에 관한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칸트는 학문적 지식이란 필연적이고 보편적이어야 하며 동시에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장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서 학문적 지식은 선천적이면서 종합적인 판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천적인 종합 판단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것이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의 핵심적인 질문이다. 칸트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모든 공리와 정리가 선천적 종합 판단이라고 보았다. 가령 ‘직선은 두 점 사이의 가장 짧은 거리이다.’라는 명제는 확실히 종합적이다. 왜냐하면 ‘곧음’이라는 개념은 양에 관한 것을 포함하지 않고 다만 성질에 관한 것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곧음’이라는 개념으로부터 ‘가장 짧은 거리’라는 개념이 도출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직선은 두 점 사이의 가장 짧은 거리이다.’라는 명제는 직관에 의해 절대적 확실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종이에 점을 찍고 선을 그려 보는 경험에 의하지 않고서도 전적으로 확실하기 때문에 선천적이다. 그래서 칸트는 유클리드 기하학이 선천적인 종합 명제가 존재함을 보증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칸트의 철학적 인식론은 철학과 과학 발전에 중요한 근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유클리드 기하학이 선천적이라는 믿음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출현으로 칸트가 선천적으로 보았던 명제들이 결국은 경험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점이 밝혀져서 무너지게 된다. 기원전 350년경에 쓰인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에는 다섯 가지의 공리가 제시되어 있는데, 이 중 다섯 번째 공리는 매우 복잡하지만 평행선 개념을 사용하여 ‘직선 밖의 한 점에서 이 점을 지나 주어진 직선에 평행한 직선은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 라고 기술할 수 있다. 이와 동치인 또 하나의 공리는 ‘모든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다.’라는 공리이다. 평행선 공리를 검증하려면 두 직선을 무제한 늘여야 하므로, 이는 우리가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명제가 아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이러한 공리들이 항상 성립하지는 않는다.

 

 과거에는 지구가 평평하며 인간은 그러한 평면 위에서 살고 있다고 믿었다. 후에 지구는 둥글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유클리드 기하학은 평면을 다루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구를 완전한 구라 생각하고 이와 같은 구면에 적합한 기하학에 대해 생각해 보자. 구면 위에서의 직선은 무엇일까? 구의 중심을 기준으로 구의 면 위에 만들 수 있는 가장 큰 원인 대원(大圓)을 그렸을 때 두 점 간의 최단 거리는 대원의 일부가 되고 이러한 대원의 일부를 구면의 측지선이라고 한다. 따라서 가장 합리적인 답변은 대원을 직선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따라서 구면에서의 직선은 유한한 길이를 갖는다. 또한 두 점 사이의 최단 거리를 구면거리라 하는데 구면거리는 두 점을 잇는 측지선이 된다. 이에 따르면 모든 경선과 적도를 통과하는 위선은 그 자체가 대원이므로 직선이다. 이러한 정의로부터 우리는 구면 위에서 삼각형을 그릴 수 있다. 북극에서 적도로 내려오는 경선 두 개와 그 둘을 연결하는 적도상의 선분을 취하면 삼각형이 만들어진다. 이때 이렇게 만들어진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보다 크게 된다. 따라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평행선 공리가 성립하지 않게 된다. 지구 표면에 그린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삼각형의 크기가 작을수록 180도에 가까워지지만 그 크기가 커질수록 180도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와 같은 구면 위에서 성립하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구면기하학이라 부른다. 한편 말안장 모양의 곡면에서의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쌍곡기하학이라 하는데 여기서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보다 작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나온 후,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평평하지 않고 중력에 의해서 휘어 있음을 보였다. 그리고 일반 상대성 이론은 공간에 대한 기초 이론을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찾았다. 이처럼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출현은 철학에서의 인식론뿐만 아니라 과학의 발전에서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주었다.

 

 칸트는 주어 개념이 술어 개념을 포함하느냐의 여부로 분석 판단과 종합 판단을 구분하고, 경험과 무관하게 알 수 있는 지식인가의 여부로 선천적 지식과 후천적 지식을 구분한다. 그런데 칸트는 종합적이면서 동시에 선천적인 지식이 있다고 주장한다. 학문적 지식이 그것인데, 이것은 선천성이 갖는 보편성과 필연성을 지닐 뿐만 아니라 종합성이 갖는 지식 확장성도 갖는다는 것이다. 칸트는 유클리드 기하학이 선천적인 종합 명제가 존재함을 보증한다고 생각하였으나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출현으로 그 믿음이 무너지게 된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같은 공리들이 성립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철학에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상대성 이론과 같은 과학 이론에도 토대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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