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다.’라고 하며 머리카락은 신체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부위 중 하나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머리카락만이 그 양식의 변화가 자유로워, 옷차림이나 몸단장과 함께 그 사람을 표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머리를 풍성하게 치장하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머리를 풍성하게 치장하는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머리를 풍성하게 보이도록 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에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땋거나 묶어 올리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도 자신의 머리카락만으로는 풍성하게 보이는 데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을 붙이거나 얹어서 사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러한 머리치장 장식을 조선 시대에는 다리 혹은 가체라고 하였다.

 

 다리를 이용한 여성들의 머리 장식은 대수, 큰머리, 트레머리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대수는 궁중에서 왕비가 적의를 착용할 때 머리에 쓰도록 화려하게 꾸민 대례용 가체이다. 큰머리는 왕실이나 반가에서 의식이 있을 때 하던 머리 모양으로 어여머리 위에 떠구지라는 나무로 만든 큰머리를 얹어 놓은 것이다. 트레머리는 큰머리 모양을 축소한 머리로 서북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과거에는 신분에 따라 할 수 있는 다리의 종류가 달랐다. 상류층은 좋은 다리를 보기 좋게 머리 위에 얹고 끝에는 빨간 댕기를 매었지만, 하류층은 머리를 풀어 헤친 풀머리에 다리를 초라하게 얹혔다. 이처럼 과거에 다리는 여성들의 부와 계급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는데, 머리카락을 함부로 자르지 않았던 과거에는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다리의 가격이 값비쌌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머리카락을 풍성하게 치장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웨이브가 있다. 인공적으로 머리카락에 웨이브를 주는 일은 아주 오래 전, 클레오파트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머리카락에 알칼리성 진흙을 바른 다음, 막대기에 감아 붙이고 말렸다가 씻어 내는 방법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오늘날의 파마와는 다르지만 그 원리는 상당히 비슷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파마의 원리는 무엇일까?

 

 머리카락은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단백질은 기본적으로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아미노산이 서로 공유 결합을 통해 연결된 구조를 펩타이드 사슬 이라고 부르고 이를 단백질의 1차 구조라고 한다. 1차 구조가 서로 결합하면 2차 구조를 형성하는데, 2차 구조에는 나선 구조 형태의 알파 헬릭스와 병풍 형태의 베타 시트가 있다. 2차 구조끼리 서로 결합을 통해 3차 구조의 단백질을 형성하면 이 단백질은 하나의 생체 분자로써 기능을 담당할 수 있게 된다. 머리카락을 구성하고 있는 알파 케라틴 단백질은 단백질의 2차 구조 가운데 하나인 알파 헬릭스처럼 나선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에 알파 케라틴이라고 부른다. 이 알파 케라틴의 나선 구조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수소 결합과 이황 결합이다.

 

 수소 결합은 알파 케라틴에 열이나 물을 가하면 깨진다. 알파 케라틴의 수소 결합이 깨지면서 나선 구조가 풀려 쭉 뻗은 형태로 변하고, 물을 증발시키거나 다시 냉각시키면 자발적으로 나선 구조로 돌아가는 성격이 있다. 알파 케라틴이 다시 수소 결합이 생성될 때는 당시에 가장 가까운 수소와 산소가 서로 결합하기 때문에 머리에 열을 가해 원하는 모양을 잡은 후 그대로 냉각시켜 새로운 수소 결합을 유도하면 원하는 스타일의 머리를 연출할 수 있다. 그러나 수소 결합은 구조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이 아니므로 열을 가해 고정한 머리카락에 물을 묻혀 물 분자의 수소와 산소가 머리카락 속의 수소 결합을 끊게 만든 후 머리를 말리게 되면 이전의 결합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황 결합은 수소 결합보다 훨씬 강력한 결합으로 단백질의 구조를 보다 안정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황 결합은 아미노산의 하나인 시스테인의 -SH 그룹이 서로 [-S-S-] 공유 결합을 한 것인데, 이 [-S-S-] 결합은 –SH 그룹을 갖는 환원제에 의해 깨진다. [-S-S-] 결합에 –SH 환원제인 알칼리성 물질을 첨가하면 [-S-S-] 결합이 [-SH]…[HS-]로 환원되면서 결합이 깨지는 것이다. 반대로 산화제는 깨져 있는 [-SH]…[HS-]가 다시 [-S-S-]로 결합하게 도와주는데, 이때 알파 케라틴의 위치에 따라 처음 이황 결합과는 다른 이황 결합을 할 수 있다.

 

 우리가 미용실에서 파마를 한다는 것은 생머리였던 머리카락을 곱실대는 머리카락으로 바꾼다는 이야기이고, 이는 생화학적으로 머리카락을 구성하고 있는 단백질의 결합을 재배치한다는 의미이다. 환원제를 통해 알파 케라틴의 이황 결합을 깬 후 원하는 스타일로 열을 가해 곱슬머리를 연출하고 이후 다시 이황 결합을 유도한다. 이를 냉각하면 머리카락은 나선 구조로 자연스럽게 다시 복원되고, 그럼으로써 물에 젖어도 풀리지 않는 곱실거림이 유지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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