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어떤 활동인가? 여러 철학자들과 예술 이론가들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 노력해 왔고, 그중 하나가 이른바 ‘모방론’이다. 모방론은 예술이 결국 자연을 모방하는 활동이라고 규정하는 이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다른 동물들보다 나은 점은 바로 모방을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모방적인 동물이며, 모방에 의해 처음으로 배우게 된다.’라며 예술이 자연에 대한 모방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술이 형상에 대한 모방을 통해 있을 수 있는 세계를 표현함으로써 개연성을 지니며 시대를 아우르는 보편성을 획득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후대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 모방론은 서양에서 예술을 규정하는 이론으로 오랫동안 독보적인 위치를 점해 왔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헤겔은 자신의 저서인 『미학 강의』에서 모방론이 예술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며, 모방론을 세 가지 측면에서 비판하였다.

 

 첫째, 헤겔은 예술이 외적으로 존재하는 자연의 형상을 있는 그대로 모사(模寫)하려 하더라도, 표현 수단의 한계로 인해 모사에 제한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는 예술이 아무리 높은 완성도를 지닌다 해도 개별적이고 특수한 표현 수단을 통해 원본인 자연을 똑같이 표현할 수 있는 길은 애초부터 없다고 생각하였다. 예술을 자연에 대한 완벽한 모방으로 생각한다면 예술이 속임수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고, 예술 활동 역시 불필요한 수고가 되거나 일시적이고 헛된 유희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헤겔은 모방이 기술적 숙련성을 얻기 위한 방편일 뿐 자유로운 정신 활동인 예술 행위 자체는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인간은 모방보다는 스스로 만들어 낸 것에 대해 더 큰 기쁨을 갖는다고 보고, ‘인간은 흉내 내는 재주를 완성하는 것보다 망치와 못 등을 발명하는 것을 더 자랑스럽게 여긴다.’라고 하였다.

 

 둘째, 헤겔은 예술을 단지 모방으로 규정한다면 대상의 외형에 대한 정확한 모사가 중시되어 모방 대상 자체에 대한 본질적 고려가 간과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는 이러한 경우 미의 대상과 내용에 대한 본질적 고려가 사라질 수 있어 모방할 가치가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나, 대상이 지니는 아름다움 자체에 대한 논의가 예술과 관련성이 없는 것처럼 인식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헤겔은 이렇게 예술이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생략한 채 예술의 과제가 임의적으로 선택된 대상을 정확히 모방하는 일에 그친다면, 예술은 흥미를 유발하는 유희 정도에 머무를 뿐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예술을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를 표현해 내는 문화적 형식이자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는 인류의 정신적 자산으로 보았으며, 그렇기에 예술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셋째, 헤겔은 모방론의 타당성을 인정해 준다고 하더라도 그 적용 범위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회화나 조각처럼 자연을 모델로 삼는 예술 분야도 있을 수 있지만, 자연에 대한 모방이라는 관점으로 온전히 이해될 수 없는 예술 분야도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모방의 원리를 건축이나 문학에 적용하려 하면 여러 조건이 붙어 그 원리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데, 헤겔은 이러한 경우 여러 조건을 붙여 모방의 원리를 적용하더라도 건축에 드러난 숭고함이나 문학 작품에 드러난 고통, 슬픔 등과 같은 심리적 상태는 그 원형을 찾기 어렵고 따라서 그것을 모방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내면의 감정이나 사상처럼 모방의 원리로 설명되지 않는 요소들을 표현한 작품들도 예술에서 중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헤겔은 예술이 세계의 참된 아름다움과 인간이 중시하는 정신적 가치들을 감각적이고 개별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고 보았기에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예술을 모방이라는 하나의 원리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름다움이 본질적으로 외적인 형상으로부터 탄생한 자연미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으로부터 탄생한 예술미라는 점을 강조했다. 자연도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외형적 모방이 의미 없는 것만은 아니지만, 자연에 대한 모방만으로는 예술의 본질을 형성하는 정신을 완전히 표현할 수는 없기에 정신의 표현은 모방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받게 된다는 것이다. 근대 이후 인간의 주관, 창조적 능력과 개성적 표현이 예술적 자유로 점점 더 강조되고, 상상력의 발휘가 예술의 중요한 원천으로 간주되면서 예술을 단순히 자연의 모방으로 규정하는 이론의 한계가 드러나게 되었다. 예술을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를 표현하는 활동으로 생각하고, 예술가들의 예술적 자유를 중시한 헤겔의 입장이 현대에도 설득력을 지닌다는 점은그의 이론이 지닌 가치를 보여 준다.

 

 모방론은 서양에서 예술을 규정하는 이론으로 오랫동안 독보적인 위치를 점해왔다. 하지만 헤겔은 예술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모사할 수 없으며, 외형에 대한 모방을 중시할 경우 모방 대상 자체에 대한 본질적 고려가 사라질 수 있고, 모방론의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라고 모방론에 대해 비판했다. 헤겔은 아름다움이 본질적으로 인간의 정신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했으며, 아름다움은 자연미가 아닌 예술미라 보았는데, 이러한 그의 입장은 현대에도 설득력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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