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음악 역사상 음악의 연주에 대한 이론적 연구가 나타난 것은 18세기 이후로, 당시 사용되었던 ‘연주(Vortrag)’란 용어는 연사가 원고를 읽듯이 별다른 숙고(熟考) 없이 문자로 고정된 악보를 객관적으로 소리화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관점을 지닌 대표적인 이론가는 독일의 작곡가로 명성을 떨쳤던 피츠너이다. 그는 연주자를 예술 작품의 음악적 요구를 표현하는 의무를 가진 사람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연주란 작곡가가 쓴 악보를 충실하게 재현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작품의 구성 요소가 되는 모든 기호에서 벗어나는 연주는 작품의 변형을 가져올 뿐이며, 연주자가 작품을 변형하는 것은 작품의 예술성을 해치는 잘못된 연주라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그에게는 오직 정확성만이 기술적으로나 미학적으로 성공한 연주의 조건이 된다.

 

 그런데 음악 작품이 작곡가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고, 음악 작품이 악보와 동일한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다양하게 재구성될 수 있다는 생각이 받아들여지면서 기존의 연주론을 비판하는 시각이 대두되었다.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 파울 베커인데, 그의 연주론은 음악의 근원과 본질을 고려할 때 음악 연주는 즉흥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왜냐하면 음악이란 본래 순간의 울림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음의 순간적인 울림을 통해서만 진정한 존재적 의미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그는 이상적 연주를 ‘즉흥 연주’로 설정하고 악보를 청각적으로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재생산적 연주’를 강하게 비판한다. 베커는 악보로 기보된 것 자체는 미완성의 것이고 음악의 반쪽에 불과할 뿐이므로 음악은 연주를 통해 부족한 것이 채워져야 한다고 본다. 즉 연주 활동은 미완성을 완성으로 이끄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주자가 추구해야 할 즉흥 연주 란 무엇인가? 여기서 말하는 즉흥 연주는 악보 없이 즉흥적으로 하는 연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베커는 음악이란 미술이나 문학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기록된 것 자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창작품이 청각적으로 재현될 때 완벽하게 존재한다고 보았다. 즉 작곡가가 예술적 착상을 악보로 기록함으로써 음악의 반이 완성되고, 이것이 연주자에 의해 연주될 때 비로소 하나의 예술 작품이 완성된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미완성을 완성으로 끌어올리는 연주자에게는 당연히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의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베커에게 있어서 진정한 연주란 연주자의 상상력, 그리고 작품 해석의 독립이 보장될 때 나오는 즉흥 연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로써 연주자는 단순히 작곡가 또는 작품과 청중을 연결해 주는 중계자의 역할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와 대등한 위상을 갖는 창조자의 위치까지 도달한다. 베커의 연주론은 연주자가 작곡가의 종속자로서 작품의 재생산을 목표로 삼는 역할에서 벗어나 작곡가와 동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개성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고 있다.

 

 음악학자 다누저는 분석적 해석론이란 개념을 통해 작품 해석의 이론적 측면과 작품 연주의 실제적 측면을 연결시키려 했다. 그는 분석이나 이론적 고찰을 통해 작품의 구성이나 내용을 이해하려는 작업도 해석이며, 작품을 음향학적으로 재현하는 연주 작업도 해석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분석적 해석론에서 해석은 이론적 분야와 실제적 분야로 나뉘지만, 이 두 방향은 서로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한 작품을 이론적으로 연구, 분석하는 작업은 연주 실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동시에 연주의 경험은 작품의 이론적 해석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 연주론에서는 개별 작품에 대해 논하기보다는 훌륭한 연주의 일반적 법칙을 찾아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 분석적 해석론에서는 개별 작품에 대한 이론적 분석을 통해 해당 작품의 연주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피츠너는 바람직한 연주란 작곡가가 쓴 악보를 충실하게 재현하는 연주라고 본 반면, 즉흥 연주론을 내세운 베커는 이상적인 음악 연주가 즉흥 연주라는 관점에서 출발하여 연주자가 미완성의 악보를 완성된 음악으로 만든다는 측면에서 연주자의 위상을 높게 평가한다. 다누저는 분석적 해석론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작품 분석의 이론적 측면과 연주의 실제적 측면의 연결을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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